입향조 오국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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公께서는 조이(朝以) 고려문하시랑(高麗門下侍郞)과 공양왕(恭讓王) 2년 경상도 안렴사(慶尙道按廉使)로 命을 받고 南下하던 중 고려조(高麗朝)가 亡하였다는 비보(悲報)를 들이시고 三日동안 통곡(痛哭)하시다가 관인(官印)을 땅에 묻고 관대(官帶)를 벗어버리고 聞韶(義城) 어봉산중(魚鳳山中)으로 들어 은거하시면서 세상(世上)을 마치셨다.

이태조(李太祖)께서 公의 높은 의절(義節)에 감복(感服)하여 관직(官職)을 내리시려고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이에 응하지 않으시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냇가에 가서 귀를 씻으니 후인(後人)들은 그 시내를 세이천(洗耳川)이라 불렀고 지금도 洗川과 洗村으로 불리고 있다. 公의 곧은 절개(節槪)를 높이 한 士林(지방유림)에서 단(壇)을 쌓고 제사(祭祀)를 모시다가 1818년 서원(書院)을 창건(創建)하여 편액(扁額)을 숭절사(崇節祠)로 하였고 고려징사(高麗徵士) 금산(錦山) 吳 先生이라 하였다.

보계(譜系)가 실전(失傳)되어 공께서 역임한 벼슬, 치적(治積), 생몰년월일 등을 아울러 상고할 수 없었다. 공께서 의성에서 은둔하고 생을 마쳤기 때문에 후손들은 의성 人이 되어 흩어져 거주하였으며, 우리는 入鄕祖로 숭배를 드리고 있다. 공께서는 자식이 셋 있었는데 이름은 책(策), 순(淳), 진(進)이다. 책(策)에게는 자식이 없으며 순(淳)은 자식 하나가 있으며 진(進)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, 찰(札)과 변(變)이다. 찰(札)은 生員에 합격하였다. 찰(札)은 三男을 두었고, 변(變)은 一男을 두었다.